권리분석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가 없는 물건이었습니다. 선순위 대항력 임차인의 보증금 3억 7,500만 원이 걸려 있었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가 확약서를 내면서 그 부담이 사라졌고, 등기부에 낙찰자가 인수할 권리도 하나 없었습니다.
그런데 신건부터 4차까지 네 번 연속 유찰됐습니다. 1억 9,814만 원에도 응찰자가 없었습니다.
서울서부지방법원 2024타경632** 사건입니다. 저는 이 물건에 입찰하지 않았습니다. 권리분석을 통과한 물건을 왜 걸렀는지, 그리고 제가 처음에 뭘 잘못 봤는지 정리합니다.
등기·명세서는 2026년 9월 29일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. 개인정보는 마스킹했습니다.
1. 물건 개요
| 소재 |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에코빌(3차) 4층 |
| 용도 | 다세대(빌라) · 방3, 욕실2, 주방, 거실 |
| 면적 | 전용 84.87㎡(25.67평) · 대지권 33㎡(9.98평) |
| 감정가 | 387,000,000원 (토지 270,900,000 + 건물 116,100,000) |
| 경매 종류 | 강제경매 · 채권자 주택도시보증공사 |
| 청구금액 | 413,753,424원 |
| 최선순위 설정 | 2021. 5. 13. 근저당권 |
서울연가초등학교 북서측, 지하철 6호선 증산역 인근입니다. 제2종일반주거지역이고 동측으로 폭 5m 내외 포장도로에 접합니다. 입지가 나쁘지 않습니다.
2. 1단계 — 감정가의 13%까지 떨어졌던 물건
이 사건은 2024년 11월에 개시됐습니다. 그리고 한참을 유찰했습니다.
2026년 5월 12일 기일의 최저매각가격이 51,942,000원이었습니다. 감정가 3억 8,700만 원의 13%입니다. 그 지경까지 갔는데도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.
이유는 임차인이었습니다.
| 임차인 | 전○현 |
| 보증금 | 375,000,000원 |
| 확정일자 | 2020. 12. 24. |
| 전입신고 | 2021. 2. 26. |
| 임차권등기 | 2022. 9. 16. (임차권등기명령) |
전입일 2021년 2월 26일이 최선순위 설정(2021년 5월 13일 근저당)보다 앞섭니다. 선순위 임차인이므로 배당으로 보증금이 전액 회수되지 않으면 나머지는 낙찰자가 인수합니다.
최저가가 5,194만 원이어도 실질 취득가는 5,194만 + 3억 7,500만 = 4억 2,694만 원입니다. 감정가를 넘습니다. 아무리 떨어져도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.
참고로 임차권등기가 되어 있으면 임차인이 이사를 나가도 대항력이 유지되고, 임차권등기를 경매개시결정 전에 마친 경우에는 배당요구를 하지 않아도 배당받습니다. 이 사건은 임차권등기(2022. 9. 16.)가 강제경매 개시(2024. 11. 4.)보다 앞섰습니다. 그 구조는 임차권등기가 있는 물건, 입찰 전에 봐야 할 5가지에 정리했습니다.
3. 2단계 — 확약서가 3억 7,500만 원을 지웠습니다
2026년 4월 29일,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법원에 확약서를 제출했습니다. 매각물건명세서 비고란에 이렇게 적혔습니다.
주택도시보증공사가 이 사건 신청채권자이고, 신청채권자는 전○현의 임차보증금반환 채권을 양수한 승계인으로 배당금으로 보증금 전액을 변제받지 못하더라도 매수인에 대하여 잔존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권을 포기하고 임차권등기 말소에 동의한다는 확약서를 제출함(2026.04.29.자)
매각물건명세서 비고란
이 확약서의 법적 성격과 확인해야 할 것들은 보증기관의 대항력 포기 확약서,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에서 조문 단위로 다뤘습니다. 이 사건에서는 HUG가 보증금 전액을 승계했고 확약 범위도 명확합니다.
그 직후인 5월 12일 기일이 변경됐고, 사건은 감정가 387,000,000원부터 신건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. 인수 조건이 바뀌었으니 5,194만 원짜리 최저가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.
여기까지가 제가 처음 이 물건을 봤을 때의 그림입니다. 막혀 있던 물건이 열렸다고 읽었습니다.
4. 3단계 — 그런데 네 번 더 유찰됐습니다
| 회차 | 매각기일 | 최저매각가격 | 결과 |
|---|---|---|---|
| — | 2026. 5. 12. | 51,942,000 (13%) | 변경 ← 확약서 제출 |
| 신건 | 2026. 6. 16. | 387,000,000 (100%) | 유찰 |
| 2차 | 2026. 7. 21. | 309,600,000 (80%) | 유찰 |
| 3차 | 2026. 8. 25. | 247,680,000 (64%) | 유찰 |
| 4차 | 2026. 9. 29. | 198,144,000 (51%) | 유찰 |
| 5차 | 2026. 11. 3. | 158,515,000 (41%) | 예정 |
인수 부담 3억 7,500만 원이 사라졌고, 감정가의 절반인 1억 9,814만 원까지 내려왔습니다. 그런데 응찰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.
5. 권리는 정말 깨끗합니다
혹시 제가 놓친 권리가 있나 싶어 등기부를 다시 봤습니다. 말소기준권리는 2021년 5월 13일 근저당(채권최고액 1억 원)입니다.
| 성립일 | 권리 | 금액 | 처리 |
|---|---|---|---|
| 2021. 2. 26. | 주택임차권 (전○현) | 375,000,000 | 대항력 있음 → 확약서로 해소 |
| 2021. 5. 13. | 근저당 | 100,000,000 | 말소기준 |
| 2023. 7. 11. | 가압류 | 25,218,296 | 소멸 |
| 2023. 11. 1. | 가압류 | 20,249,066 | 소멸 |
| 2024. 11. 4. | 강제경매 (HUG) | 청구 413,753,424 | 소멸 |
| 2024~2025 | 압류 3건 | — | 소멸 |
채권총액은 5억 2,046만 원이지만 매각물건명세서의 “소멸되지 않는 등기부권리” 항목은 비어 있습니다. 설정된 것으로 보는 지상권도 없습니다.
2024년 10월에 전입한 임차인이 한 명 더 있지만 말소기준권리보다 한참 뒤라 대항력이 없고, 배당요구도 하지 않았습니다.
권리분석상 걸릴 것이 없습니다. 그런데도 안 팔립니다.
6. 문제는 등기부 밖에 있었습니다
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입니다
5층 건물의 4층입니다.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. 계단으로 4층까지 올라가야 합니다.
전용 25.67평에 방 셋, 욕실 둘입니다. 면적만 보면 4인 가족이 살 만한 집입니다. 그런데 그 정도 세대를 이루는 연령대에서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을 선택하는 경우가 요즘은 많지 않습니다. 장을 보고 올라가는 것도, 유아차를 들고 오르내리는 것도, 나이가 들어 무릎이 나빠진 뒤에도 감당해야 합니다.
경매에서 이 조건은 낙찰가가 아니라 출구를 막습니다. 싸게 받는 것은 가능합니다. 문제는 되팔 때입니다. 매수 대기자 자체가 얇으면 매도 기간이 길어지고, 그 기간 동안 보유비용과 금융비용이 계속 나갑니다. 싸게 산 만큼을 거기서 다 까먹습니다.
전유면적의 30%가 양성화된 증축분입니다
건축물대장을 보면 전유부분 84.87㎡가 이렇게 나뉩니다.
- 철근콘크리트구조 60.015㎡
- 경량철골조(조립식) 24.855㎡
그리고 매각물건명세서 비고란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.
본건 전유부분의 면적 중 경량철골조(조립식재실) 24.855㎡는 “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”에 따라 2015.1.16. 사용승인 되었음
매각물건명세서 비고란
불법 증축이었다가 특별조치법으로 양성화된 부분이라는 뜻입니다. 지금은 적법합니다. 다만 전유면적의 약 30%가 경량철골조 조립식이라는 사실은 남습니다. 단열과 소음에서 본체와 차이가 나고, 매수자가 실물을 보면 알아차립니다.
감정평가서상 건물값이 1억 1,610만 원인데 토지값이 2억 7,090만 원입니다. 감정가의 70%가 땅값입니다. 건물 자체에 매기는 값이 그만큼 낮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.
7. 제가 처음에 틀렸던 지점
확약서가 붙은 것을 보고 저는 경쟁이 몰릴 것으로 봤습니다. 막혀 있던 물건이 열렸으니 같은 계산을 한 입찰자가 여럿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.
네 번의 유찰이 그 판단이 틀렸다는 답입니다.
제가 한 실수는 인수 부담이 사라진 것과 물건이 좋아진 것을 같은 말로 읽은 것입니다. 확약서는 권리상 장애물을 치웁니다. 그게 전부입니다. 치우고 나서 드러난 물건이 팔리는 물건인지는 별개의 질문이고, 그 질문은 등기부가 아니라 현장이 답합니다.
순서를 뒤집었어야 했습니다. 팔리는 물건인지를 먼저 보고, 그다음에 권리를 봤어야 합니다. 권리분석은 들어가도 되는지를 알려줄 뿐, 들어갈 만한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.
8. 5차에도 들어가지 않을 가능성이 큰 이유
11월 3일 5차 최저가는 1억 5,851만 원입니다. 감정가의 41%입니다. 숫자만 보면 충분히 싸 보입니다.
그런데 네 번의 유찰이 말해주는 것은 이 가격대에서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?는 사실입니다. 제가 1억 5,851만 원에 받는다고 해도, 되팔 때 마주하는 상대는 지금 응찰하지 않은 바로 그 시장입니다. 취득세와 명도비, 수리비, 보유 기간의 금융비용을 얹고 나면 여유가 생각보다 얇아집니다.
물론 정확한 시세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엘레베이터 없는 4층을 1억 7천정도(최저가 1억6천+취득세 등 제비용)를 주고 살수 있는 매매가가 과연 형성될 수 있느냐 입니다.
엘리베이터는 낙찰 후에 고칠 수 있는 항목이 아닙니다. 수리로 해결되는 하자라면 비용을 계산해 입찰가에서 빼면 됩니다. 건물 구조에서 오는 조건은 뺄 금액이 없습니다. 그래서 거릅니다.
확약서가 있어도 다른 권리 때문에 아예 들어갈 수 없는 물건도 있습니다. 매각물건명세서에 소유권 상실 가능성이 적힌 선순위 가등기 물건 사례가 그렇습니다.
정리
- 선순위 임차인 보증금 3억 7,500만 원 때문에 감정가의 13%까지 떨어졌던 물건이다.
- HUG가 확약서를 제출하면서 기일이 변경되고 감정가부터 재시작했다.
- 인수 부담이 사라졌는데도 네 번 연속 유찰됐다. 51%에서도 응찰 0이다.
- 등기부에 인수할 권리는 없다. 문제는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 4층이다.
- 확약서는 권리 장애물을 치울 뿐, 팔리는 물건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.
권리분석을 아무리 정교하게 해도 출구가 막힌 물건은 들어가면 안 됩니다. 저는 이 물건에서 그 순서를 한 번 뒤집어 봤다가 네 번의 유찰로 답을 받았습니다.
이 글은 제가 검토한 과정을 정리한 것으로, 특정 물건에 대한 입찰 권유나 투자 자문이 아닙니다. 권리관계와 시세는 물건마다 다르므로 매각물건명세서, 현황조사서, 감정평가서, 등기부를 직접 확인하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.